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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조주태 법무법인(유)동인 변호사( 법학과, 80 )
조주태 동문은 법학과 80학번으로 동기들보다 뒤늦게 사법시험을 봐야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한다. 대부분 1학년 끝날 무렵에 시작한 사법시험을 그는 4학년부터 시작해서 3년 만에 합격했다. 상대적으로 늦었지만 실력에 비해 운이 좋아 합격했다고 말하는 그는 2년간 연수를 받고 3년간 군복무를 마친 후 1992년에 검사로 임관됐다. 검사로서 23년 근무 한 뒤 명예퇴직을 한 후 법무법인(유)동인에 변호사로 근무 중이다.
조주태 동문은 재학 당시 동아리 활동 등 학교생활보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데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수업을 마친 후 친구들과 낮술을 마시기도 하는 등의 추억을 말하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
검사로 재직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기아그룹 분식회계 및 비자금 조성사건’과 ‘숭례문 방화사건’을 꼽았다. 그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3부 및 대검 중수부 연구관 재직시 담당했던 이 분식회계 사건은 대기업 공적자금 수사의 모델로서 지금까지도 많은 검찰 후배들이 참고하고 있는 사건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 검사 재직 시 방화사건의 수사지휘를 신속하고 탁월하게 진행해 업무능력에 있어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2007년 어느 휴일 휴식을 취하며 9시 뉴스를 시청하던 중 호외로 뜬 남대문 화재 사건을 접하며 ‘빠른 수사가 필요하다’고 느낀 그는 바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서울중앙지검에 출근했다. 검사들을 소집해 남대문경찰서와 합동으로 수사에 착수하며 용의자를 탐색해나갔다. 검사의 촉으로 문화재 방화 전력이 있는 일종의 확신범일 것이라는 판단 하에 동종 범죄 전력 전과자들을 중심으로 수사망을 좁혀나가며 지하철 버스 등 CCTV까지 일일이 확인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사건발생 3일 만에 범인을 신속히 검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검사로서의 삶이 녹록하지도 않고 여유롭지도 않았지만 자신의 열정을 통해 사회가 더욱 나아진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다시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법조인으로서 유명한 조주태 동문이지만 그는 성악가를 꿈꾸기도 했었다. 고등학생 때 집안 몰래 성악을 배우기도 했었다. 그는 고등학교 음악시간 독창무대에서 매번 칭찬을 받는 등 노래에도 소질이 있었다. 도에서 학예발표회에 나가 2등을 하는 등 그의 노래실력은 이미 검증돼 있었다. 대학생 때 교회에 찬양대에서 솔리스트(독창자) 활동도 했었다. 검사로 활동할 때에도 항상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다른 취미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빴기에 한동안 꿈을 접었었다. 당시 밤샘 근무 등이 당연시 여겨졌기에 일에만 전념했고 옷가지 등을 빨래할 시간도 없어 집에서 옷을 챙겨 보내줬었다고 한다. 평검사 시절이 지난 후 2002년에 전주지검 부장으로 가며 비교적 시간 여유가 생기며 교회 찬양대로 발걸음을 향했다고 한다. 이후 ‘대뮤즈’라는 성악 동호회 존재를 알게 됐다. 조주태 동문은 수소문을 통해 대뮤즈 동호회 회장을 만나게 됐고 검사들 몰래 활동했다. 몰래 활동한 이유는 당시 검찰 내에서 취미활동에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재는 법무법인(유) 동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며 성악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공정하고 냉철하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진실을 파헤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온 그는 변호사로서도 무엇보다 의뢰인에게 진정성 있는 법률 조력자가 됨으로써 신뢰받는 법조인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로스쿨을 준비하는 우리학교 동문들에게 그는 무작정 공부를 하는 게 중요하지 않고 인접 학문 서적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사법 공부를 시작한 그의 빠른 합격 비결은 여기에 있다. 그는 “대학시절 많은 책을 읽었던 것이 사법시험 합격의 지름길로 날 인도했다”고 말한다.
그는 성공이라는 결과보다 늘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공의 순간은 찰나이며 그 과정 자체가 바로 우리 삶의 본질이기 때문에 자신의 자리에서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성공은 자연스럽게 뒤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학교가 대학평가에서 늘 10위권 이내에 들어가는 우수한 대학으로 남아있는데 이제는 더 도약해야 할 때다. 외국어를 필두로 이과 계열까지 확장시킬 수 있다면 그만큼 장점 있는 학교는 없을 것이다”라며 우리학교의 발전을 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