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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박정상 전문기사 九段, KBS 바둑해설위원 (중국어,03)~
1. 2000년 입단 이후 2019년도에 프로 통산 1000번째 대국을 기록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바둑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진로 결정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버지가 중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주위에 똑똑하고 차분한 학생들은 다 바둑을 배웠다고 하셨어요. 저는 어렸을 때 주위가 산만했는데 저의 그 모습을 보고 아버지께서 바둑을 시키셨죠. 그렇게 바둑을 7살 때 동네에서 처음 배우게 됐습니다. 배운 지 몇 달이 지나지 않아 KBS에서 주관한 유치원부 바둑대회에서 3등을 했습니다. 그렇게 주변에서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컸고 스스로 재미도 느꼈어요. 쉬지 않고 꾸준히 바둑을 두다 보니 자연스레 초등학교 6학년 때쯤 프로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2. 한국 기원은 어떤 단체이며, 이곳에서 동문님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한국 기원은 한국 바둑의 총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대한축구협회, 대한야구협회가 있듯 바둑에는 한국 기원이 있습니다. 기관지 발행, 바둑보급, 입단대회 개최, 방송 제작 등 여러 일을 하는 단체이고요. 저는 현재는 바둑 해설을 잠시 쉬고 있고 이곳에서 국가대표 선수 코치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바둑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만큼 현재는 아시안게임을 목표로 선수들 훈련에 가장 공들이고 있습니다.
3. 외대로 대학 진학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또 대학생활 중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일반적으로 프로기사들은 대학 진학을 선택하지 않고 대국에 집중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바둑 이외에 다른 세계도 궁금해서 대학 진학을 선택하게 됐어요. 그중 한국외대 중국어과에 진학하게 된 이유는 바둑계에서 교류가 많은 중국 문화에 대해 공부하고 중국 선수들과 교류하고 싶어서 택하게 됐습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바둑에 할애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기에 입학 직후 바둑 성적은 조금 떨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대학에서 그 이상의 것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현재까지 인연을 맺고 있는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는 점에 가장 감사합니다. 바둑밖에 없던 저에게 바둑 이외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 신기했고, 재미도 있었어요. 1학년 때는 학교 생활도 열심히 했습니다. 중국어대 노래패에 들어가서 공연도 한 기억이 있네요.(웃음)
4. 바둑과 인생의 공통점 및 바둑이 인생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바둑판 361칸이 인생을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 희로애락이 다 담겨있죠. 또 승부가 깔끔하기 때문에 부족함을 알고 더 노력하게 만들어 줍니다. 저의 좌우명인 ‘죽을 때까지 강해지겠다’는 2006년에 후지쯔배라는 일본에서 진행된 세계대회 우승했을 때 스스로 처음 새겼습니다. 그 당시 제가 한국 랭킹이 5~6위 정도였는데 세계대회 결승까지 갔어요. 결승에서 당시 중국 랭킹 2위를 만났습니다.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스스로 억누르려 해도 ‘정상아 너는 이만하면 잘했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주변 기대도 그랬고요. 그렇지만 절대 지면 안된다고 생각했고 스스로 약해지는 게 싫었어요.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다 단호한 의지를 적어 그걸 들고 대국을 했습니다. 이처럼 바둑은 사람을 강해지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5. ‘조앤탑 바둑TV’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소통하는 바둑 기사로 큰 인기를 얻고 계신 것 같은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는지, 또 어떤 콘텐츠를 다루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저랑 같이 유튜브를 하고 있는 분이 조한승 九단이세요. 그분 또한 외대 중국어과 02학번이신데 선배님이십니다. 바둑계에선 서로를 20년 넘게 봐왔고요. 그분이 7~8개월 전쯤에 같이 유튜브 운영을 해 볼 생각이 없는지 저에게 물어보셨어요. 저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같이 시작하게 됐습니다. 저희의 본업이 유튜버가 아니다 보니 영상 제작을 남는 시간에 하고 있어요. 따라서 업로드를 많이 할 수 없어 구독자분들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는 시간을 좀 더 활용해서 열심히 운영해보겠습니다.
저희는 바둑 유튜브다 보니까 다루는 콘텐츠는 전문 바둑 위주이고요. 또한 초보자 분들도 쉽게 볼 수 있는 강좌와 프로기사들의 일상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동료 유명 기사들을 초청하기도 해서 바둑팬분들과 소통하는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바둑팬분들이 보시기에 지금까지 프로기사들과의 소통 공간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저희가 바둑을 두고 승부하는 치열한 모습, 말없이 몰두하는 모습 들만 브라운관을 통해서 비쳤기 때문에 유튜브를 통해서는 좀 더 편한, 인간적인 면을 보여드리고 싶은 게 저희 의도입니다.
6. 현대에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오락거리가 많은 반면 바둑은 진입장벽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동문님이 생각하시는 바둑의 미래는 어떤가요?
냉정하게 말해 바둑의 인기는 저희 아버지 세대나 저의 어린 시절에 비해서도 줄어들었습니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게임과 같은 접하기 쉬운 오락거리가 훨씬 늘어난 점도 무시할 순 없겠죠. 그에 비해서 바둑은 즐거움을 느끼기까지의 진입 장벽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래도 저는 바둑이라는 게임은 천년만년이 지나도 이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바둑이 유서가 깊다는 점을 들 수 있어요. 하나의 예로 난중일기를 봐도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에도 바둑을 두고 있다는 기록이 십여 차례 등장합니다. 삼국시대에도 우리나라에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는 고증이 있죠. 수천 년 이어온 바둑은 앞으로의 수백 년 수천 년 후에도 우리의 전통 놀이로써 쭉 이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7. 이세돌 九단과 알파고 대국에 대해 해설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때 느낀 감정은 어떠셨나요?
저도 평생 바둑을 업으로 해온 사람으로서 허무했습니다. 이전에도 인공지능과 사람의 대결은 많았는데 인공지능이 한참 뒤처졌었습니다. 알파고가 첫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에도 당연히 이세돌 9단이 이긴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세돌 9단을 대국 1주일 전에 이 공간(한국기원)에서 만났을 때도 바둑계 전체는 물론이고 이세돌 9단도 본인이 이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패배했고 그때의 허무함은 대단했죠.
그렇지만 대국 이후를 보면 인간도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이세돌 九단과 대국할 당시 알파고의 수법이나 그 이후에 나온 인공지능 수법은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한 수법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인간은 이미 그것을 흡수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 당시의 수법을 보면 전혀 어색하지가 않아요. 그만큼 바둑 인공지능이 인간 세계에 빠르게 스며들었습니다. 현재는 우리 국가대표팀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인간의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8. 요즘에는 어떤 일에 가장 열중하고 계신가요? 또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지금은 예전에 제가 세계 최고가 되고 싶었던 만큼의 마음을 담아 우리나라 최고의 선수들의 세계무대를 위한 훈련에 힘쓰고 있습니다. 예전에 이창호 구단이나 이세돌 구단 시절에는 한국이 세계 바둑 최강인 것이 당연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중국은 바둑계에서 천재들이 막 쏟아져 나오는 황금세대입니다. 그 친구들에 대응을 할 수 있는 우리나라 인재들을 만들고, 세계대회에서 한국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지금은 제가 살고 있는 이유죠. 선수들 훈련을 잘 시켜서 한국이 세계 바둑 최강국이 되는데 일조를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2년 뒤로 다가온 아시안게임에서도 그 목표를 이룰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