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지’에 대한 단상
정치의 계절이긴 한가보다. 곳곳에서 ‘험지(險地)’라는 단어가 들려오고 있으니 말이다. 말 그대로 ‘험난한 땅’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유독 정치권에서 큰 선거를 앞두고 자주 운위되곤 한다. 특히 험지 출마를 선언할 때는 한껏 비장해진 표정과 함께.
총선이나 지방선거를 치를 때 ‘험지’를 운운하게 된 것은 한국의 기형적인 정치구조에 기인한 바가 크다. 예전보다 많이 완화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지역주의 정서는 크고 작은 선거에서 핵심기제로 작동하며 맹위를 떨치고 있다. 정책, 미래 비전, 인물론과 같은 사회과학적인 테마는 ‘출신지역’이라는 생물학적 변인 앞에서 제대로 힘도 못 써보고 고꾸라지곤 한다.
보통은 보수 정당에서 호남 지역으로 가거나, 민주•진보진영에서 영남권에 도전하는 것을 험지 출마의 대표적인 사례로 본다. 혹은 꼭 영호남이라는 무대가 아니더라도, 그동안 자당의 강세 지역이 아니었던 곳에 과감하게 투신하는 것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인식된다.
unsplashⓒ. 총선이나 지방선거를 치를 때 ‘험지’를 운운하게 된 것은 한국의 기형적인 정치구조에 기인한 바가 크다
공천만 받으면 상대적으로 손쉽게 재선, 3선의 위치에 등극하는 경우와 비교한다면야, 험지에 출마하려는 정치적 결단은 그 자체로 평가받을 만하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명분’도 갖추고 있고, 전근대적인 정치문화를 개선하는 데 기여하는 부분도 작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험지’라는 말이 맥락 없이 남발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험지’가 한낱 정치공학적 레토릭으로 소비되면서 유권자들의 건전한 판단 기준을 흐리고 있는 것이다. 험지를 규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너도나도 내가 선택한 지역구를 험지라고 부른다. 그래야 나의 도전에 보다 큰 의미가 부여되고, 공천장을 받을 확률도 커지기 때문일 터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여정이 험난할 것임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이로써 쉬운 길을 마다하고 자진하여 가시밭길을 걷는다는 영웅적 서사를 획득하고, 선당후사(先黨後事)의 정신으로 똘똘 뭉친 절개 있는 정치가의 표상으로 자신의 지위를 격상시킨다. 설령 험지에 출마한 결과가 낙선이라 하더라도, 이들은 스스로에게 ‘속죄양’의 이미지를 덧입힌다. 그러면서 화려한 재기를 도모한다.
실천적 행동보다는 말과 구호가 난립하는 여의도의 강퍅한 자화상을 보다 보면, ‘진짜 험지’와 ‘가짜 험지’를 분별하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 그렇게 ‘험지’라는 낱말에 찜찜함을 느끼고 있던 차에, 필자는 이 표현의 긍정적 용례를 정치권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이 말을 써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했다. 이 사람들은 기성 정치인들과 달리 자신이 가는 곳을 험지라고 스스로 규정하지 않았다. 언론과 시민들이 응당 그렇게 판단하고 인정한 것이다. 이들에게 험지는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봉사와 의무 그리고 신념의 공간이었다. 정치인들처럼 험지로 가는 이유를 미사여구를 곁들여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았다. 카메라를 의식하지도, 미디어의 헤드라인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지체할 여유가 없다고만 했다.
국민에 봉사하고 공공의 이익에 복무해야 마땅한 정치인보다 더욱 강한 소명의식으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바로 ‘코로나 19’의 확산 속에서도 자원해서 대구경북 지역의 병원으로 발걸음을 내디딘 의료진이다.
‘코로나 19’의 확산 속에서도 자원해서 대구경북 지역의 병원으로 발걸음을 내디딘 의료진. Ⓒtvn
정치인들은 이따금씩 ‘정치 생명을 걸었다’는 표현을 쓴다. 관용어구처럼.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물론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선출직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처절하게 지지를 호소하고는, 다음 선거에 다시 태연하게 등장하는 경우를 숱하게 목도해왔다. 한데 ‘코로나 19’ 감염의 위험을 충분히 인지한 상황에서도 방역 최전선에서 애쓰고 있는 의료진은 정말 ‘생명을 걸고’ 의료인으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다. 말 그대로 ‘사투(死鬪)’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당선이 되면 금배지를 단다. 지역에서, 당에서, 소속 상임위에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게 된다. 특히 험지로 불리는 지역구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은 정치적 브랜드 가치 제고라는 효과도 덤으로 얻는다. 다음 선거에서도 힘을 받을 수 있고, 지자체장을 노려볼 수도 있으며, 여당인 경우 장관 자리도 욕심내 볼 수 있다. 종종 더 큰 꿈을 꾸기도 하고.
하지만 가족들의 걱정을 뒤로한 채 한달음에 병원으로 향한 의료진에게는 그런 가시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보상은커녕 수 시간 동안 방호복을 입으면 물도 못 마시고, 화장실에 마음대로 갈 수도 없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마스크와 고글에 얼굴은 엉망이 되며, 호흡도 곤란해진다. 아니, 애초에 자신들의 전문지식과 봉사정신에 대한 반대급부 자체를 ‘계산’하지 않았던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이 위기에 단 한 푼의 대가, 한마디의 칭찬도 바라지 말고 피와 땀과 눈물로 시민들을 구합시다”라고 호소했던 대구시의사회장의 말에서 알 수 있듯 말이다.
의료진에게는 언제나 환자가 최우선의 고려 대상으로 보이는데, 험지 운운하는 위정자들에게선 유권자보다 상대후보의 얼굴이 더욱 강하게 비친다. 이쯤 되니 ‘험지’라는 말의 용법이 어떠해야 하는지 감이 잡힌다.
물론 정치인의 직업윤리와 의료진의 그것을 동일 선상에서 놓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권력의지 자체를 나쁘게 볼 이유도 없다. 다만 ‘험지’가 마케팅 용어로 전락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정치인들은 ‘진짜 험지’에서 헌신하고 있는 의료진을 보고 정치인으로서의 본분을 다시 숙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다음은 우리 차례다. ‘진짜’를 골라내는 것! ‘가짜 험지’가 더 이상 판치지 않기를 바란다. 아울러 험지에서 분투하는 모든 영웅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김민석(중국어 07)
listen-liste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