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담론’ 그리고 가수 권인하
‘꼰대’에 대한 담론이 어느 때보다도 왕성한 시즌이다. 전국의 부장님들은 오늘도 자신이 꼰대의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한다. ‘꼰대 감별법’이라는 자가 테스트가 온라인상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고, ‘꼰대주의보’라는 기발한 신조어가 운위되고 있다. 세계적인 미디어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오늘의 단어’로 한국어인 ‘꼰대(KKONDAE)’를 소개했다. 실로 기가 막힌 글로벌라이제이션이다.
언어와 행동에 대한 치열한 자기 성찰, 자신이 얼마나 열려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장황하기 그지없는 설명에는 꼰대라는 사회적 낙인(stigma)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 숨어 있다. 꼰대가 아님을 ‘증명’해야 여러 세대가 공존하는 커뮤니티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제 ‘탈(脫) 꼰대’는 좀 더 젊어지기 위한 선택적 행보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격상됐다.
꼰대를 주제로 한 책도 출간됐다. 민이언 작가는 <순수꼰대비판>에서 다음과 갈이 일갈했다. “저마다가 견지하고 살아가는 삶의 문법이 다르건만, 우리의 대부분은 타인의 문법에 관한 이해의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는, 난독을 넘어선 맹시의 소유자들이다.”
‘타인의 문법’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맹시의 소유자’가 넘쳐나는 시대에 필자는 한 명의 가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바로 환갑의 나이에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권인하다. ‘천둥 호랑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는 최근 26년 만에 음악순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가 하면, 25만 명이 넘는 유튜브 구독자를 끌어 모으며 여느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다.
1959년생인 그가 꼰대 소리를 듣기는커녕 밀레니얼 세대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실제로 그의 콘서트 티켓 예매자의 5할 이상이 20대라고 한다. 흔치 않은 현상임에 틀림없다.)
첫 번째는 무엇보다 후배들의 세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한 점이다. 그의 유튜브 채널에는 그가 부른 수많은 커버곡이 업로드되어 있다. 특기할 만한 부분은 대부분의 노래가 한참 어린 후배들의 노래라는 것이다. 이는 적이 희유한 장면이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로 한 시대를 풍미했고, 14부작 미니시리즈의 주연 배우로도 활동했을 정도로 당대의 스타였던 권인하. 그는 ‘과거’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현재’와 호흡하기 위해 태연의 <만약에>, 벤의 <180도>, 닐로의 <지나오다> 등을 부른다. 네티즌들은 열광한다. 원곡과는 전혀 다른 권인하만의 음색, 분위기, 감성에 매료된 것이다. 무려 370만 명이 넘게 본 영상도 있다.
가수 권인하의 유튜브 채널 첫 화면. 인기 업로드 리스트를 보면 대부분이 그가 까마득한 후배들의 노래를 부른 영상임을 알 수 있다. Ⓒ 권인하 유튜브
두 번째는 소통이다. 30여 년의 나이 터울이 있는 후배들의 기량과 노력을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가수를 꿈꾸는 지망생에게도 댓글을 달아주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다소 짓궂게 그를 성대모사하는 유튜버와도 격의 없이 소통을 하고, 아들뻘 친구들과 유튜브 ‘합방(합동 방송)’을 하기도 한다. 팬들의 신청곡 요청에도 늘 세심히 귀를 기울인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팬들은 그를 큰삼촌이나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생각한다.
마지막은 탄탄한 실력과 피나는 노력이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그가 온라인상에서 ‘선생님’ 혹은 ‘국민 부장님’ 소리를 듣는 것은 아닐 게다. 기존에 그가 즐겨 부르던 노래와는 상이한 장르의 멜로디와 가사에 익숙해지기 위해 그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연습에 투여한다. 그렇다고 요즘 트렌드를 그래도 따라 하는 것은 단호히 거부한다. 그만의 색깔로 재창조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 결과 완전히 다른 느낌의 새로운 음악이 탄생한다.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고음의 노래도 깔끔하고 멋스럽게 소화하는 그의 연륜과 노력에 대중들은 환호한다.
저열한 악플이 난무하는 이 살풍경한 시대에 그의 유튜브 채널에 달린 댓글을 읽다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중 압권은 “이런 분이 나의 부장님이라면 내가 먼저 노래방 회식을 제안하겠다”는 재치 있는 댓글. 꼰대 담론이 화두가 된 지금, 권인하의 존재는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조어 몇 개 외운다고 갑자기 ‘열린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권인하가 까마득한 후배의 낯선 노래를 수백 번, 수천 번 불렀을 그 ‘시간’을 생각해보자.
벌써 연말이다.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후배들에게 적어도 꼰대 소리는 듣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요즘은 ‘젊은 꼰대’ 개념도 주목받고 있기 때문에, 꼰대 낙인은 더 이상 연령의 문제가 아니다.) 독자 여러분의 ‘탈 꼰대’ 노력을 응원한다! 아, 그리고 권인하가 부르는 노래들도 한 번씩 들어보시길.
김민석(중국어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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