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과 부모의 화법
최근 연예계가 가스라이팅 의혹으로 떠들썩하다. 유명 여배우가 본인의 남자친구를 심리적으로 조종하여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게끔 유도하여 자신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사실 관계는 알 수 없으나, 얼핏 들으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한 두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이 심리적 조종에 의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게 쉬이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이 용어도 생소한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란, 상대방의 심리를 교묘히 조작 혹은 선동하여, 상대방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어 그를 통제하는 행위를 말한다. 과거에는 단순히 성격의 문제, 상황의 문제로만 치부되었던 가스라이팅은 점차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이 또한 하나의 심리적인 학대가 될 수 있음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가스라이팅의 사례로 나치 독일의 히틀러를 들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은 히틀러를 강압과 억압의 아이콘,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독재자 등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히틀러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은 인물이다.
히틀러가 짧은 시간에 큰 지지를 얻어 권력을 장악하게 된 배경에는 그가 대중을 상대로 한 가스라이팅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아름답고 희망찬(?)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뿌렸고, 동시에 온갖 혐오를 지속적으로 전파했다. 거짓말을 한 번 한 것이 아니라 수차례, 반복적으로 설파해서 그것을 진실로 둔갑시켰으며 분노와 증오를 통해 대중을 열광시켰다. 전형적으로 타인을 조종하려고 한 왜곡된 행위들. 대표적인 가스라이팅의 사례이다.
이러한 가스라이팅은 우리 주변에서도 생각보다 쉽게 일어날 수 있는데, 특히 가장 밀접하고 가까운 관계에서 자주 발생한다. 부모자식 관계 혹은 연인 관계가 그러하다.
연인 관계야 그렇다 쳐도, 부모자식 관계에서까지 가스라이팅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자식 관계의 가스라이팅도 분명히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 부모가 이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습관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자식에 대한 소유욕과 통제하려는 경향은 분명 부모의 “습관적인” 화법과 어투를 통해 겉으로 표출된다. 그것은 자녀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자녀는 부모의 눈치를 보며 어느 순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녀는 점점 의존적으로 변하고, 부모의 감정에 속박되어 주체성을 점차 상실한다. 이 것이 대표적인 부모자식 간 가스라이팅의 프로세스 이다.
사실 참 어려운 일이다. 자식 잘 되라는 던진 한마디가, 너무 속상해서 나도 모르게 푸념한 한 마디가 자녀에게 가스라이팅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보통 부모의 양육법이 자녀의 성격과 정체성이 형성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그렇기에 특히 자녀가 어리거나 공감 능력이 뛰어날수록 부모는 더더욱 말을 조심해야 한다. 부모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자녀가 얄밉고 내 뜻대로 따라와주지 않는 것에 대해 야속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는 정말 신중해야 한다. 그 작은 감정 표현 하나가 자녀에게는 엄청난 가스라이팅으로 다가와서 큰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속상함은 속상함으로, 서운함은 서운함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자녀에게 사과를 받으려 하거나 부모가 느끼는 감정을 자꾸 주입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과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가스라이팅으로 상처받는 아이들이 없는지 분명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